광주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우려스러운 모습이었다.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선정한 통학로 개선사업을 비롯한 시민참여예산 20건을 전액 삭감하고, 그 자리에 특정 교회와 병원, 아파트 인근 정비 사업을 끼워 넣은 것은 시의회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지방자치제의 핵심은 주민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에 있다.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선정한 사업들은 지방자치 정신의 결정체다. 특히 '걷고싶은 도시, 광주' 보행환경개선 사업은 150여 건의 시민 제언 중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전문 여론조사까지 거쳐 선정된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이를 단순히 '중복'이라는 이유로 백지화시킨 것은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처사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삭감된 예산의 자리에 '쪽지예산'이라 불리는 의원들의 개별 요구 사업들이 채워졌다는 점이다. 서현교회 일대 도로정비, 임동 천변우로 보도정비 등 특정 지역이나 시설에 편중된 사업들이 추가된 것은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추가된 사업 예산이 삭감액보다 10~20억원 더 많다는 점은 예산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역구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과 부합해야 하며, 특정 단체나 지구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시민 전체의 이익, 특히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시의회의 이번 예산 심의 과정은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재정 운영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저해하는 행태다. 예산 심의는 단순히 숫자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발전 방향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무엇보다 시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광주시의회는 예산 심의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시민참여예산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예산 심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예산 심의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심의 결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근거를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의회 의원들은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자로서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단기적인 지역구 민원 해결에 치중하기보다는, 도시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광주시의회의 이번 예산 심의 행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의회가 진정한 시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민들 또한 의회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참여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의 지방자치가 더욱 성숙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지방자치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회의 책임 있는 의정활동이 조화를 이룰 때 실현될 수 있다. 광주시의회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더욱 시민 중심의 의정활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고홍석 기자 khs1207@ igyotongs.com